대만에서 가장 높은 산은 위산(玉山, 옥산)으로 한국에서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다닐 때부터 최고봉인 옥산에 오르고자 시도했지만, 사전에 입산 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인솔자가 있어야 하는 등 조건을 맞추지 못해 지금까지 오르지 못했습니다. 다니던 東海大學校 등산반에도 옥산에 가자고 요청하고 계획도 물었지만 모두 허사였지요.

반면에 合歡山은 그런 제약이 없으면서 해발 3,000미터가 넘기에 등산 서적을 구입해서 1985년경 혼자 정상에 올랐던 산입니다. 한국에서 산을 많이 다닌 편이고, 1,000미터 넘는 산은 다 오르겠다고 쏘다니기도 했지만, 3,000미터는 당시 저에겐 꿈이었습니다.

허환산(合歡山) 북봉 정상. 해발 3,422미터.
허환산(合歡山) 북봉 정상. 해발 3,422미터.

기억을 더듬어보니 초등학교 시절 남산에 올라가 놀던 거 말고 처음 정상을 밟은 곳이 관악산입니다. 관악산 아래 낙성대라는 곳에 중학교를 지어놓고 운동장도 다 완성되지 않은 학교에 배정되었습니다. 학생들 동원해 관악산 개울에 가서 돌을 주워다가 화단 조성하던 그런 낭만(?)적이 시절이었지요. 1학년 학기 초에 상당히 똘똘해 보이던 한 친구가 나와 또 한 명에게 관악산에 가보자고 해서 덩달아 따라나섰습니다. 꼭대기에 올라갔더니 잔설이 남아있었고, 어두워지기 전에 정신없이 내려온 기억만 납니다.

그다음 산행은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 겨울에 도봉산에 갔다가 미끄러워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인연이 쌓여서 그랬는지 대학에 들어가서는 자주 산행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에선 갈 수 없는 3,000미터에 대한 로망이 싹텄지요.

해발 3,000미터부터 고산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고산으로 올라갈수록 기압은 낮아지고 산소가 희박해져 힘이 빠지고 어지럼증을 느끼고, 반대로 4~5,000미터 고산에 사는 사람들은 내려올수록 기압이 높아져서 몸이 적응을 못 한다고 합니다. 과거에 차마고도를 통해 교역하던 사람들이 주로 쿤밍(昆明)에서 거래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고산으로 올라가거나 반대로 내려가려면 그곳에서 일주일 정도 적응해야 했고요.

40여 년 전 자료에 나온 교통편과 약도를 보고 배낭을 꾸려 合歡山을 찾았습니다. 20대였던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듯합니다. 물과 배고픔을 면할 정도의 먹거리만 있으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지요.

텐트, 침낭, 물주머니와 등산장비를 넣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버스에서 내릴 때도 혼자였고, 걷는 내내 혼자였습니다. 거대한 산속에서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포장된 도로나 인공 구조물도 없었고, 그 흔한 전신주도 보이지 않는 태고의 자연을 벗 삼아 홀로 걸었습니다. 올라갈수록 나무가 작아지고 고사목도 보이는 것이 마치 지리산 세석평전이나 치악산 정상 부근을 걷는 느낌도 들더군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저 멀리 잔디를 펼쳐놓은 듯한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해발 3,070미터에 있는 쿤양(昆陽)휴게소. 이른 아침이라 몹시 쌀쌀했습니다. 뒤에 능선이 잔디처럼 보입니다.
해발 3,070미터에 있는 쿤양(昆陽)휴게소. 이른 아침이라 몹시 쌀쌀했습니다. 뒤에 능선이 잔디처럼 보입니다.

높은 산엔 바람 때문에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고 풀만 남았나보다고 생각하고 가까이 갔더니 키 작은 대나무였습니다. 箭竹(전죽, 화살대)이라고 부르는데 무릎 아래 크기였습니다. 영락없는 잔디로 보였지요.

가까이에서 보면 이렇게 키 작은 대나무입니다. 40년 전에도 이 크기 그대로였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이렇게 키 작은 대나무입니다. 40년 전에도 이 크기 그대로였습니다.

대만에는 눈이 오지 않지만, 이곳 合歡山은 온도차가 20여 도 납니다. 그러니 겨울에 눈을 볼 수 있는 곳이고, 눈이 내리면 방송국에선 득달같이 달려와 설경을 송출합니다. 그 당시 대만에선 合歡山이 설경으로 유명했습니다.

몇 시간이나 걸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에 정상 가까이 텐트를 치고 맞은편을 바라보니 멀리 보이는 산들이 저녁 햇살을 받아 황금빛 파노라마의 장관을 연출하더군요.

이번에 동료들과 오른 산은 최고봉인 북 허환산(위)이고, 당시는 허환산 봉우리가 하나만 표시되어 있었는데, 지금 자료를 보니 (아래) 3,275미터 주봉을 간 듯합니다. 야영은 3417미터 봉우리에서 했고, 금빛 석양은 동쪽 合歡尖山(3217미터)을 본 듯합니다. 바위산이 병풍처럼 보였고 붉은 석양에 금빛으로 보였지요.
이번에 동료들과 오른 산은 최고봉인 북 허환산(위)이고, 당시는 허환산 봉우리가 하나만 표시되어 있었는데, 지금 자료를 보니 (아래) 3,275미터 주봉을 간 듯합니다. 야영은 3417미터 봉우리에서 했고, 금빛 석양은 동쪽 合歡尖山(3217미터)을 본 듯합니다. 바위산이 병풍처럼 보였고 붉은 석양에 금빛으로 보였지요.

저녁을 먹고 어둠이 찾아들며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바람에 따라 산소가 영향을 받는지 머리도 띵하고 속도 울렁거리기에 일찍 누워 잠을 청했지요. 다음 날 아침 바람도 자고 고요하더군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 동료들과 合歡山을 찾았습니다. 4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合歡山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포장도로들이 여기저기 뚫렸고 찾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사진 찍기 바쁘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더군요. 차도에서부터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사진 찍기 바쁘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더군요. 차도에서부터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했습니다.

仁者樂山, 知者樂水라는 말이 있지요. 제가 어진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하나 내세울 지식도 없고, 지적 능력도 많이 떨어지니 산이 저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나름 산을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유로 첫째, 선택과 책임이 오롯이 저의 것입니다. 갈 것이냐 말 것이냐부터 숱한 갈림길에서 모든 결정은 내가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둘째, 모르기 때문입니다. 항상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설렘이 좋습니다.

셋째, 힘들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고해의 세상에서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하는 이유. 어쩌면 그 고통이야말로 행복을 찾는 열쇠가 아닐까요? 육체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 속에는 느끼고 깨닫는 희열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요사이 많은 부모가 자식의 앞길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무슨 짓이든 합니다. 자식의 손에 쥐어줘야 할 행복의 열쇠 대신 불행의 열쇠를 주는 우를 범하고 있지나 않은지!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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